작품소개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혹은 “책상에 앉아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한 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하얀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당신에게. 여기, 활자유랑자 금정연이 꼽은 34개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문장론이 아니”며 “멋진 문장을 쓰는 법을 일러주는 책”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금정연’이지 않은가(저자는 이 대목에서 독자들이 금정연을 알까요? 물었지만, “모르셨다면 이제 아시면 됩니다”). 서점에서 온 택배 상자가 뜯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방에서 마감에 허덕이며 밤새 글을 끼적이는 생계형 서평가 금정연 말이다. 이 책은 그가 어쩌다 잡문으로 삶을 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밤의 기록을 담아냈다. 그는 책들에 파묻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조차 문장을 떠올린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지 않으면서도 무심코 책을 뒤적이고 문장을 발견하며 엉뚱한 길을 찾아내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서평은 언제나 자신의 삶에 들어온 하나의 문장들로부터 시작한다. 혹은 둘, 셋, 다섯. 활자유랑자를 사로잡은 문장, 생계독서가를 버티게 하는 문장,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에게 영감을 던지는 문장들…. 우리는 존 버거, 알베르 카뮈, 롤랑 바르트, 찰스 부코스키를 넘나들며 그가 꼽은 문장들을 곱씹고 이 문장들에서 시작됐으나 번번이 실패하는 듯 보이는 그의 (애)쓰는 삶에 눈물짓다가 그럼에도 실패를 모르는 그의 글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책과 글에 관한 숨길 수 없는 애정과 증오, 삶에 대한 농담과 다짐으로 뒤엉킨 서른네 편의 에세이, 혹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그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생겨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문장들 속에서 내 삶을 만나고, 그의 문장을 훔쳐 나의 문장을 써내려가게 될지 모른다. 바로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는 동안 다른 이들이 쓴 멋진 문장들을 강탈하고 때때로 훼손하며 나는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저자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글자들의 뒤를 쫓으며 현재 여러 매체에 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http://blog.aladin.co.kr/poptrash
목차
Intro
1부 삶과 문장 사이에서
나는 실패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한 구절을 떠올렸다
완벽한 첫 문장을 찾는 데 실패했다면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소설의 첫 문장
그 문장들을 읽으면 멋진 사람이 될 줄 알았지
여전히 빛나는 서문들
때때로 입안에서 맴도는 제목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팔아버릴걸
잃어버리기 위해 있는 것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서
항상 패배하는 성숙한 사람
먹고살기 위해 경험한 것을 기록했을 뿐
이름 없는 것들에게도 삶은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모르셨다면 이제 아시면 됩니다
앎으로도 어쩔 수 없을 때
2부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귀를 가진 사람의 할 일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세상의 모든 요청을 거절하는 것
있는지 없는지조차 더는 알 수 없는 구원자에게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진정성 있는 글을 기대한 독자에게
시큰둥한 독자에게
오직 매혹만이 존재하던 순수한 독서의 시간
앞으로도 읽지 않을 독자에게
좋은 책에는 두 종류가 있다
당신이 읽은 책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대체 무엇이 끊임없이 글을 쓰게 만드는지
매너리즘에 빠진 서평가가 다시 글을 쓰는 법
서평가의 손버릇
어떤 탈출
남의 말은 그만 인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