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2015년 음악사를 매개로 동서양과 고금을 넘나드는 문화사를 종횡무진 설파한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뒤이어 생사의 경계에서 독학한 명리학을 한 권의 책 [명리]를 통해 단숨에 골방에서 광장으로 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그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거침없이 열어젖힌 저자 강헌이 이제 그가 온 생애에 걸쳐 섭렵한 온갖 경험과 학습의 총합을 장착한 책을 들고 나타났다.
저자소개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축구를 사랑한 소년에서 얼치기 문학청년이 된 그는 소설가가 되어볼 요량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재능 없음만 확인한 꼴이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동안 강의실에 들어간 날은 150일이 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술집에서 보내다 홧김에 같은 대학의 음악대학원 음악학과에 들어가 대충 졸업했다.
대학원을 마친 후 그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던 영화에 꽂혀 무작정 영화판으로 들어가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의 일원이 되어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같은 '불법 영화'들을 만들어 배포하다 영화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사전에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영화법 조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우겨 위헌제청을 내고 1995년 헌법재판소에서 승소함으로써 사실상의 검열기관이었던 '공연윤리심의위원회'를 철폐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물론 이것은 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변호인 김형태의 공적이지만 그리 짧지 않은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조국에 기여한 사항일 것이다. 독립영화 활동과 더불어 에로영화 대본도 쓰고, 방송드라마와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으며 [상상]이나 [리뷰] 같은 별 영향력 없는 문화잡지도 만들었고, 졸지에 대중음악평론가가 되는 한편으로 수많은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갑종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삶을 악착같이 유지했다.
계속된 폭음으로 2004년 대동맥이 파열되는 참사를 겪으며 생사의 경계선을 오간 이후로는 '덤'과 같은 여생을 살고 있다. 긴 요양 생활 동안 명리학命理學을 접했고, 다시 서울로 복귀한 후에는 이태원에서 5년간 와인클럽을 열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어준의 '벙커1'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필두로 한 음악 강의와, 와인 및 축구 강의, 그리고 '좌파명리학'이라는 이름의 명리학 강의와 팟캐스트도 열었다.
호는 의박意薄이며 자는 산만散漫이어서 나이 50이 넘도록 책 한 권 쓰지 못하다, 첫 책으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냈다. 이후 [명리-운명을 읽다- 기초편], [명리-운명을 조율하다- 심화편],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1·2] 등을 출간했다.
목차
0.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그리고 대중의 탄생
1894년, 거대한 역사의 분기점을 잉태하다
동학농민혁명, 이것은 혁명인가, 혁명이 아닌가
주체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획득한 역사적 의미
내가 명성황후를 '민비' 혹은 '민자영'이라 칭하는 이유
조선 땅 최초로 해방구를 맛보다
일본의 진짜 우익 덴유쿄, 우익인 듯 우익 아닌 리버럴 집단
조선과 일본, '합방'인가 '합병'인가
동학을 바라보는 일본의 두 개의 시선
혁명의 실패,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다
동학에서 만민공동회로
드디어, 대중의 탄생
1. 근대의 여명에 노래가 울려퍼지다
한국대중문화사는 곧 이식과 독립의 역사
우리의 이야기를 100년 전에서 시작하는 까닭
대중, 그 너머의 서로 다른 대중
대중을 불러온 여러 이름과 그 의미의 변천
대중이 채택한 마스크, '민족'과 '계급'
혁명의 도구, 동학의 노래
민중의 염원을 노래에 담다
서구 문화 이식의 창구, 기독교의 노래
'그들'의 노래에서 '우리'의 노래로
우리는 왜 그토록 기독교에 열광했을까
우리 근대의 대중문화를 이끈 두 개의 동력
아무도 모르는 그 노래, 대한제국의 [애국가]
새로운 애국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쏟아져나오는 '애국'과 '계몽'의 노래
창가와 민요의 공존, 두 개의 문화가 함께 있던 시대
우리 근대와 일본, 그리고 엔카와의 상관 관계
못다 부른 한 곡의 노래,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를 열다
[이 풍진 세상], 조선·일본·서구의 문화가 섞여 탄생한 노래
복잡하고도 미묘한 우리 근대의 특수성
2. 근대의 출발선에 선 문학의 풍경
상상할 수 없는 탈문맹률, 이후 우리의 저력이 되다
높은 학구열의 이유와 그 배경
소설, 글자를 아는 이들에게 너무 가까운 예술
근대 이전과 이후, 공동체의 스토리에서 개인의 이야기로
왜 [무정]을 근대적 장편소설의 시작이라 부르는가
너의 소설은 순수예술이냐, 대중예술이냐
멜로드라마의 등장
예술의 새로운 지배 계층, 부르주아 계급
근대 이전, 우리에게는 이미 소설이 있었다
신소설은 안 되고, 근대 소설은 가능케 했던 그 무엇
추리소설과 연애소설, 대중소설 견인의 쌍두마차
역사소설의 인기를 활용하려던 신채호, 역사소설로 친일을 했던 이광수
계몽소설, 브나로드 운동,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전쟁
문제적 인간, 이광수를 생각하다
춘원을 지배한 손병희와 안창호
이름도 무정한 그 이름, [무정]
3. 대중의 문화로 근대 시민의식의 자양분을 삼다
때는 바야흐로 1926년
죽은 이의 노래, [사의 찬미]가 불러온 바람
대중문화 흥행 돌풍의 신호탄, 영화 [아리랑]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의 등장
시간의 공존, 태양력의 선택
오포午砲와 시계, 그것이 상징하는 바
도시화로 인한 공간의 재구성
자동차가 들어오고, 전차가 다니고, 배도 다니고
식민지 조선, 근대의 상징 기차를 타다
조선에 상륙한 영화, 그 첫 만남의 풍경
근대 영화가 탄생시킨 최초의 스타, 변사辯士
오늘날, 한국 영화의 희한한 성공
우리 영화계의 기린아, 춘사 나운규의 등장
우리 영화사의 사건,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식민지 조선 땅에 울려퍼진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아리랑]
제작부터 촬영까지, 검열부터 배급까지 [아리랑]을 둘러싼 풍경
[아리랑] 그 후, 우리가 주목할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
대중음악은 이제 창가에서 유행가의 시대로
여전히 유효했던 우리의 전통가락, 판소리와 민요
신종 하이브리드, 신민요 그리고 만요漫謠| 음악 안에서 예술도 통속도 없던 시절
홍난파, 그리고 [봉선화]를 둘러싼 가짜 신화
동요, 아이들을 위한 문화의 등장
대중문화, 우리의 민족주의를 반복 학습시키다
4. 국가 없는 민족에게 스포츠는 어떤 의미였는가
한국 영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갈림길에 서다
스포츠를 사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
우리 근대 스포츠의 첫 장면은 손기정으로부터
식민지 조선인의 목에 금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