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당신의 선택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져오고 또한 당신의 선택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져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내 운명의 문제는 나로 인하여 시작하고 발생하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도 선택의 결단 앞에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여기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그리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저자소개
이지원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국어국문학문학을 전공하였다. 하지만 문학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보험 세일즈와 자동차 세일즈 등을 하였으며 독립하여 자영업을 하기도 했다. 여러 직종에 근무하였으며 사회의 여러 이면들을 경험하였다. 지금은 유통회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재직 중에 있다. 저자는 능동적으로 자신이 자신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강요된 선택 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의 불행을 불러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택이란 단순히 어떤 이익을 위하 여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내면 깊숙이 통찰하여 자신의 삶의 전반을 고려하여 선택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목차
선(善)한 행동은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높여 주고,
악(惡)한 행동은 인간을 인간 이하로 떨어뜨린다.
배움이 적을지라도 생각만은 많이 하라. 지식은 다만
그대가 알고 싶은 것만을 배우면 그만이다.
부정한 신념에 복종할 때 인간은 불행해지고,
그 허위의 신앙은 인생을 조잡하게 만든다.
악은, 사람들 사이를 유영(遊泳)해 다니다가
망설이는 자와 부딪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어떤 가문의 출생인지 질문 받았을 때
‘나는 모든 세계의 시민’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를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는 욕망은 음란을 탐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절대로 만족되는 일이 없다.
종교는 모든 사람의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철학이며,
철학은 또한 종교의 증명이 된다.
앞으로 나아가라.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곧 썩게 될 것이다.
동정심이 깊은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
더 확실한 것은, 부자는 동정심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다.
선량한 사람은 서로 의심하는 일 없이 남을 돕는다.
사악한 사람은 한 사람을 배반시키기 위하여 고심한다.
현재는 과거의 그림자다.
이것을 인도에서는 업보라 부르고 있다.
무릇 재물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결핍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두 번째는 이미 다른 강물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노동 없이는 휴식의 기쁨도 없다.
도덕적인 노력 없이는 생활 인식의 기쁨도 있을 수 없다.
행복이나 조화, 사랑, 자유 등을 추구하는 욕구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다.
인생은 인식이다. 내가 어떤 한계 안에 있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 속의 자유에 속해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진리는 항상 소박한 것이다. 소박은 매혹적이며 이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소박한 사람이 적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명백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인생의 진의를 아는 것이다.
운명에 우연은 없다. 인간은 어떤 운명에 마주치기 전에
자기 자신이 그 운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착오로 인도하는 길은 몇 천 갈래 있다.
그러나 진리로 인도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기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을 바라며
그것과 동감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죄악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가끔 죄악의 노예가 된다.
법칙에 반하는 일을 하는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자기의 존재도 끝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질서 없는 심혼은 우리를 혼란하게 한다.
난잡한 사람들이 머무를 때 집안이 지저분해지는 것과 같이.
양심은 자기 자신의 정신적 본원에 대한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생활의 신뢰에 대한 지표이다.
잔혹함은 고대의 악덕이고, 허영은 현세의 악덕이다.
그리고 허영은 최후의 병이 될 것이다.
사람은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을 통역할 뿐이다.
많은 지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함은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분량이 아니라 그 질이다.
결망한 자는 쓸데없이 입을 놀려 초조함을 느끼지만
침묵 속에 있는 자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 쉽다.
선으로 향하는 길에 놓인 장애는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장애를 넘어갈 때 우리에겐 새로운 힘이 솟는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그 행실로 쓴맛을 되씹고,
착한 사람은 그 행동으로 단맛을 한껏 즐긴다.
개인에 있어서나 군중에 있어서나
이지는 생활의 유일한 안내자이다.
이 세상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喜劇)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悲劇)이다.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악마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즐겁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의 이지가 그릇된 방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비슷한 위치에 기쁨이 있다.
크나큰 기쁨은 커다란 고통과 마찬가지로 말이 없다.
모든 순수한 것은 순응 속에 있다.
이것을 지속하고 응결하려는 것이 진실로 산다는 것이다.
힘과 소유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유의 덕택으로 힘까지 손에 넣게 된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항상 단순하다.
쓸데없는 일을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
남의 괴로움에 동정하는 것은 인간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구원하는 것은 신적(神的)인 것이다.
인간의 사명은 자기의 영혼을 성찰하는 것이다.
영혼을 자기 품속에 찾아와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존심은 교만의 시초이다.
교만은, 자존심이 억제를 잃었을 때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실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회개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말라.
사상은 진리를 확실하게 한다. 옳지 못한 사상은
충분한 사색과 연구를 거치지 못한 사상이다.
공순한 사람보다도 강한 사람은 없다.
공순할수록 사람은 더 자유롭다.
적을 물리칠 때는, 그의 복수를 겁낸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때려 눕혀야 한다.
어진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면
곧 그 사람의 지혜를 배운다.
둔해질 때까지 먹지 말라.
적게 먹어서 후회하게 되는 일은 없다.
도덕의 시초는 상의(詳議)와 숙고(熟考)에 있고,
그 도덕적 목표의 완성은 지조(志操)에 있다.
악(惡)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욕(情慾)을
억제하기 위해선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
믿음은 정신의 평화를 가져온다.
믿음 없이는 정신의 평화를 찾을 길이 없다.
그대와 신(神) 사이에 있는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대 중심에 파고든 온갖 환영과 심상(心象)을 두려워하라.
허위는 말한다, 후회하라고.
그러나 진실은 말한다, 다만 사랑하라고.
인간의 마음속의 덕성은 보석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은 천연의 미(美)를 변함없이 보전한다.
겸손은 인간을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 놓는다.
인간이 교만할수록 그의 기반은 약해지고 만다.
평등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갖기 위한
공통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남들 앞에서 가면을 쓰는 습관이 있다.
그 결과, 혼자 있을 때도 가면을 쓴다.
눈에 띄지 않는 걸음으로 걸으라. 뒷걸음질 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에만 나는 의심을 품지 않는다.
불행은 불가항력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지식이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일종의 무지(無智)라고
해야 할 지식과 교환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고뇌는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의 성장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요건이다.
가장 어리석은 미신은, 인간은 신앙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의 신념이다.
세계는 연극무대와도 같아서 자기가 맡은 역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정신적 기원은 두 개의 방향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하나는 지혜를 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을 통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인간에게 있어 자기 부정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동물적인 인간에게 정욕의 만족이 그러함과 같이.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말려라.
그러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좋은 범례가 우리에게 이로운 것과 같이
어떤 사람의 심중에서 울려나온 교훈도 유익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기의 정신이 인간의 근원에 속해 있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신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오직 신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이다.
불원간에 죽으리라는 의식은 목전의 할 일 중에서
신의 뜻에 맞는 일을 선택하게 한다.
증오에 대하여 선으로 보답하라. 아직 쉬울 때 노역을 시작하라.
아직 적을 때 많은 것을 처리하라.
이 세상의 모든 제도를 향상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의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대는 허위 속에 있으나 나는 진실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이다.
우울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생활이나 세상 속에서
의의를 발견하지 못할 때 생기는 마음의 상태이다.
기억이란 지나가 버린 사물에 대한 사랑이요.
귀향(歸鄕)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의 계율을 실천함은 아주 쉬운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실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소득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적 생활을 위해선
최소한 없으면 안 되는 조건이다.
목적은 반드시 달성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표준점의 구실을 하기 위해 세워진다.
시간은 도망자이다. 그 도망자는 도망을 치면서
우리의 감정을 해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모든 것은 실재적인 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아니, 모든 것은 실재의 방향으로 흐른다.
할 수만 있다면 교훈으로써 악을 고쳐라. 할 수 없다면
악을 너에게 주어진 시련이라고 생각하라.
목적이 멀면 멀수록 더욱더 앞으로 나아감이 필요하다.
성급히 굴지 말라. 그러나 쉬지는 말라.
가면처럼 인간적인 것은 없다.
인간은 가면을 쓰고서야 자기의 속셈을 드러낸다.
인생이 행복한 것이라면, 불가피하게 겪게 될 죽음도
마찬가지로 행복한 것이리라.
모든 폭력은 이성과 사랑을 배반하고, 증오와 고립을 조장한다.
절대로 폭력에 가담하지 말라.
어느 길을 가거나 자유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모범이 되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과
그 사람인 것처럼 하는 행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로 열 번 재어 본 연후에 가위로 자르라.
다른 사람의 부족된 점은 백 번쯤 생각해본 후에 말하라.
관습이란 것에서 벗어나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완성에 도달하는 첫걸음은 항상 관습에서 떠난다는 데 있다.
종교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만이 진실이다.
그러나 철학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만이 진실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왔는가’ 하고 묻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물을 때 인생의 문제는 간단하게 풀린다.
순수는 순간 속에 있다.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그것을 지속하고 응결하려는 태도에 있다.
패해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검투사는 생명을 희망한다.
자신감을 가져라. 그러면
타인의 신뢰도 얻는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애쓰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을 더 확실히 아는 편이 좋다.
지붕을 성글게 이으면 비가 새는 것처럼
마음을 조심하지 않으면 탐욕이 그것을 뚫는다.
우리는 모든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
성공은 한 가지 길에서만 거두어야 한다.
모든 무기는 인간이 사용하지만,
분노라는 무기는 반대로 인간을 사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