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조식의 문학 활동 중에 시가(詩歌)는 주요한 영역으로 현재 109수, 잔구 57구가 남아 전하는데, 이전의 시인이나 동시대의 작가, 즉 조조(曹操)와 조비(曹丕) 그리고 건안칠자(建安七子)와 비교해서 훨씬 많은 작품을 양산했다. 또한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데, 특히 그의 오언시(五言詩)는 서정과 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수시로 변하는 복잡한 외부 사태를 쉽게 묘사할 수 있었고,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심리적 갈등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시가의 예술적 기교와 수사(修辭), 장법(章法)의 운용까지 효과적으로 발휘해 건안 시기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미친 영향이 지대해 중국 시사(詩史)에 큰 획을 그었다.
그의 시가는 내용으로 보아 그의 형인 조비가 제위에 오른 건안 25년(220)을 기준으로 크게 전·후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220년 이전)는 귀공자로서의 화려한 삶과 또한 난세와 전쟁의 와중에서 느낀
저자소개
조식(曹植, 192∼232)은 자가 자건(子建)이고, 패국(沛國) 초현(?縣) 사람으로 동무양현(東武陽縣)에서 조조(曹操)와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겨우 열 살이 되었을 때 유가 서적과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시론(詩論)과 사부(辭賦) 수십만 언(言)까지 송독해 글을 잘 지었다.
건안 11년(206) 8월에 열다섯 살이 된 조식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원정을 시작했다. 건안 14년(209)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함께한 원정길을 끝내고 12월에 고향인 초현으로 돌아왔다. 건안 16년(211)에 조식은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졌고, 7월에는 업성에서의 유락 생활을 접고 종군을 자청해서 다시 아버지를 따라 서쪽 원정길에 올랐다. 2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혼란스런 국면을 수습하고 일단 평화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건안 19년(214)에 조식이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는데, 이해에 조조는 손권을 토벌하러 원정길에 나서면서 조식으로 하여금 업성에 남아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조식의 재능을 인정해 총애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식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 단속에도 소홀하며 술을 절제하지 못해 조조에게 여러 차례 실망을 안겨 주었다. 10월에는 마침내 그의 형인 조비(曹丕)가 태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세등등했던 조식의 삶은 이때부터 백팔십도로 달라져 고난과 비애의 시련을 겪게 된다.
건안 25년(220) 정월에 조조가 낙양에서 병으로 죽자, 조비가 이어서 승상(丞相)에다 위왕(魏王)이 되었다. 즉위 후 조비는 조식의 절친한 친구인 정의(丁儀)와 정이(丁?)를 죽여 세력을 약화시켰다. 10월에는 한나라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협박해서 양위하게 하고, 위(魏)나라를 세워 연호를 황초(黃初)라 했다. 제위에 오른 조비는 중앙 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제후들을 감시했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조식은 귀족 왕자의 신분에서 견성후(?城侯)로 봉해져 감시와 핍박을 감내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로 바뀌었다.
황초 7년(226) 5월에 조비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인 조예(曹叡)가 제위를 계승해 명제(明帝)가 되었다. 이에 조식은 여러 차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등용의 기회를 달라고 조예에게 상서를 올려 구애했다. 조예는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에 대한 경계와 핍박 수위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조비와 조예 부자의 2대에 걸친 압박 속에, 조식은 11년 동안 여섯 군데의 봉지를 옮겨 다녔는데 겉으로는 제후국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연금 상태의 죄수여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었을 뿐 아니라, 친구나 형제와 마음대로 왕래할 자유도 없었다.
태화 6년(232) 진(陳) 땅의 겨우 네 개 현(縣)만을 다스리는 진왕(陳王)에 봉해진 후 11월에 조식은 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41세였다. 그의 시신은 동아의 어산(魚山)에 묻혔고, 시호로 ‘사(思)’를 하사받아 후대 사람들은 ‘진사왕(陳思王)’이라 불렀다.
목차
역사를 되새기며
세 명의 어진 신하(三良詩)
붉은 노을이 해를 가리니(丹霞蔽日行)
예장(豫章行) 두 수
제1수
제2수
원망의 노래(怨歌行)
한나라는(惟漢行)
영웅을 기리며
백마(白馬篇)
새우와 드렁허리(鰕?篇)
연회를 즐기며
연회(公宴詩)
부용지(芙蓉池詩)
태자를 모시고 앉아(侍太子坐詩)
공후(??引)
첩의 박복한 운명(妾薄命行) 두 수
제1수
제2수
내일 큰 재난을 당할지라도(當來日大難)
수레를 이미 말에 메웠으나(當車已駕行)
정월 초하루의 조회(元會詩)
백성을 생각하며
잡시(雜詩) 한 수
제2수
비를 기뻐하며(喜雨詩)
양보산(梁甫行)
문 앞에 만 리 길 온 나그네 있어(門有萬里客)
신세를 한탄하며
잡시(雜詩) 한 수
제4수
질투(妬詩)
잡시(雜詩)
뜻을 말하며(言志詩)
일곱 걸음(七步詩)
미녀(美女篇)
탄식하며(?嗟篇)
들판의 참새(野田黃雀行)
담장은 높아야(當牆欲高行)
너럭바위(盤石篇)
중용을 희망하며
잡시(雜詩) 두 수
제5수
제6수
염교 위의 이슬(?露行)
남산에서 ..…